◐창작수필 발표작품 ◐

2020, 창작수필 봄호[송아저씨와 펀치볼 사과]

싱싱돌이 2020. 2. 22. 11:57

2020, 창작수필  봄호[송아저씨와 펀치볼 사과-전옥자]   
 
송아저씨와 인연은 9년 전 백두대간을 함께 걸으면서 시작되었다. 3년을 계획하고 한달에 한 번 거침없는 도전을 할 때, 말수 적은 송아저씨는 앞서 묵묵히 한 발 한 발 걸으며 따뜻한 동료애를 보여주셨다. 힘든 백두대간을 걸으며 동고동락했던 대원들과 특별한 우정도 생겼다.   그후 몇 년이 흐르고 송아저씨가 강원도 펀치볼로 귀농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두대간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귀농을 깊게 고민하고 설계하셨을 농사 초보 송아저씨는 양구 펀치볼에서 사과농부로 첫출발을 알렸다.  
  

 송아저씨가 사과농사를 시작한 펀치볼 마을은 강원도 양구 해안면에 있는 해안분지이다. 옛날에는 습한 기운이 있어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으나, 돼지를 키우자 뱀이 사라지고 주민들은 편안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격전지였던 이곳은 사발같이 움푹 패어있어 외국 종군기자들이펀치볼(Punch Bowl-화채 그릇 생김새)”이라고 별명을 붙인 게 마을 이름으로 남았다.   
 
농토가 비옥하고 물도 맑은 펀치볼은 한서의 차가 심하고, 겨울에는 키를 넘길 정도로 눈이 많이 온다. 15도 이상 차이나는 일교차에 해발 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나오는 송아저씨의  사과는 달고 식감도 뛰어나다. 송아저씨는 눈이 펑펑 오는 날에도 밭을 갈고 일구며 쉼없이 일하셨다. 송아저씨의 진심어린 땀을 눈치 챈 사과는 큰 일교차와 맑은 햇살을 받아 탱글탱글 영글었다. 농사는 가장 정직한 노동이고, 땀과 열정을 쏟는만큼 결과물로 보답한다는 것을 송아저씨를 통해 알았다.  
 
어쩔 수 없는 우박,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입었을 때는 그것 마저 오롯이 순응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송아저씨는 잘 알고 있다. 도시에 사는 내가 송아저씨와 유일한 소통은 사과가 익을 쯤이다. 사과가 빨갛게 익을 쯤이면 내 마음도 덩달아 바빠지고 설렌다. 송아저씨에게 사과를 보내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송아저씨는 단걸음에 예쁜 사과를 엄선해 택배를 보내오신다.  
 
사과를 받는 날, 송아저씨의 땀의 결정체를 보니 울컥한다. 사과 상자엔 송아저씨가 가을 첫 수확한 빨간 홍옥이 튤립 모양을 하고 나를 반긴다. 사과가 어쩌면 튤립을 닮았어! 감탄하면서 탐스러운 사과 하나를 맛보자, 꿀이 가득 차있고 아삭아삭 달콤한 풍미에 엄지가 척 올라간다. 송아저씨가 오래 고민하고 귀농하셨을 혜안(慧眼)이 한 눈에 보인다. 감동적인 사과맛에 반해 주위에 소문을 내면서 나도 송아저씨의사과 홍보대사를 자청한다.  
 
송아저씨는 사과를 보내올 때도 사과만 덜렁 보내오는 법은 절대 없다. 작년엔 사과와 함께 보내온 메시지를 받고 눈물이 찔끔 났다.“올 한해는 참 힘겨운 것 같습니다. 펀치볼 사과 전체가 하늘이 주신 우박으로 마음 고생 많았어요. 군에서 우박 사과를 팔아주고, 주위에서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셨어요.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내년 농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많은 관심으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송아저씨는 봄에는 화사한 사과꽃 사진을 찍어 보내시고, 가을엔 주렁주렁 달린 사과 사진, 과수원에 화사하게 피어난 분홍 진달래와 다섯잎 클로버 사진을 함께 보내주시는 인정이 참 많으신 분이다.  

지난 가을, 하늘이 참 예쁜날 송아저씨가 정성 가득한 펀치볼 사과와 함께 사과밭에 주렁주렁 열린 사과 사진도 함께 보내주셨다. 사과 한 알 한 알에 온 정성을 쏟으셨을 송아저씨의 사과를 보자, 나의 어린시절 산골추억이 지나간다. 어린시절 양양 산골에서 자란 나는 학교만 파하면 책가방 집어 던지고 이웃 과수원으로 달려가 사과봉지 싸매는 일을 했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어린 손으로 사과봉지 100개를 싸매면 당시 500원을 받았다. 마을 어른들은 내가 싸맨 사과가 제일 예쁘고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시고 용기도 주셨다. 어린시절 사과에 얽힌 추억이 송아저씨의 예쁜 사과속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수줍음 많은 송아저씨는 인생의 가을 길목에서 귀농결정도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누구보다 사과농사를 연구하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송아저씨는 강원대학교 사과 마이스터대학에서  실습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선진 농가를 방문하여 선배들의 풍부한 경험을 듣고 직접 체험도 하셨다. 사과 주산지인 일본 아오모리현을 견학하고 그들의 기술을 배워와 오늘도 최고의 펀치볼 사과를 위해 불철주야 진심을 다하고 계신다.
 
멋진 송아저씨가 마음 주름살 없이 사과농사를 오래 하셨으면 좋겠다. 맛있는 송아저씨 사과를 오래 맛보고 싶다. 어느새 송아저씨의 사과 매력에 빠진 지인들이 가을에 사과 익기만을 나보다 더 사슴목으로 기다려주는 일도 고맙다. 어떤 때는 송아저씨가 공들인 사과가 순식간에 매진되어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일도 발생한다. 달콤함의 풍미가 그만인 꿀사과를  매일 먹으며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아침 사과 한 알은 기적이라는 말도 있다. 오늘도 송아저씨의 사과 한 알로 하루를 시작한다. 발걸음에 경쾌한 리듬을 달 듯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새빨간 홍로사과가 어쩜 튤립처럼 예쁘다. 튤립 닮은 사과가 나를 보고 방글방글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한 계절 앞서가는 푸른 공기 넘실대는 강원도 펀치볼에서 사과만큼 멋진 마음으로 귀농의 삶을 가꾸고 계신 사과농부 송아저씨를 응원한다. 송아저씨의 제 2의 삶이 반짝반짝 빛나길...송종근 아저씨 최고! 펀치볼 사과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