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발표작품 ◐

2020, 창작수필 가을호[이상한 돈자랑]

싱싱돌이 2020. 8. 25. 12:39

 

2020, 창작수필 가을호[이상한 돈자랑-전옥자]

 

그때 그 시절 어느 마을에 독불장군이란 별명을 가진 노부부가 살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이는 딱 10년 차이가 났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할아버지는 손수레를 끌면서 종이 배달 일을 했고 할머니는 어느 공공기관에서 청소 일을 했다.

 

두 분이 재혼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편의 영화 같다. 할머니가 청소하는 순한 모습에 반한 할아버지가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 첫 편지를 받은 할머니가 며칠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자 할아버지는 더 강력한 편지를 할머니 청소하는 장소에 꽂아 두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여전히 아무 반응을 안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말을 걸고 할머니를 유혹하기 작전에 들어갔는데 그때 서로 말이 통해 식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에게 왜 편지 답장이 없냐고 물었고 할머니가 그때 처음으로 한글을 모른다고 고백해 할아버지도 깜짝 놀랐단다.

 

이렇게 화려한 탐색 과정을 거친 부부는 가진 거 하나 없이 운명처럼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살림을 차렸다. 말 못할 숨은 사연도, 인생 굴곡도 많아 보였으나 어느날 문득 한적한 마을에 터를 잡은 생판 이방인 같은 노부부의 사생활을 이웃들은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보통으로 늙어가는 노부부 모습만 보였다. 할머니는 문맹 순박둥이지만 할아버지는 당시 유명한 상고를 나와 셈은 아주 빨랐다.

 

그런데 노부부가 마을에 이사 오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자꾸만 벌어졌다. 툭하면 마을 분들과 싸움이 붙고 할아버지로 인해 마을 품격이 떨어진다고 마음 불편해하는 분들이 늘어갔다. 할아버지와 말을 섞으면 한결같이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대체 이유가 뭘까.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왜 나를 찾을까. 나한테도 싸움을 걸면 어쩌지. 그때 수화기 넘어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전선생 우리집 사람이 칼국수 맛나게 해놓았어요. 혹시 칼국수 좋아하세요?’갑작스런 할아버지의 전화에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노부부 집안은 어떨지 궁금한 마음에 일단 그 집에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노크하고 방문을 열자 나는 눈을 의심했다.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은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소문대로 별스럽구나. 할아버지는 돈을 방안에 쭉 깔아놓고 이 돈이 오늘 번 돈이라며 으스댔다. 얼핏 봐도 꽤 많은 5만원 권을 방안에 도배하 듯 낱낱이 늘어놓았다.‘어머나 세상에 5만 원 짜리가 대체 몇 장이예요?’이 많은 돈을 할아버지가 하루에 번 돈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손수레로 배달 일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돈을 벌다니 아무튼 능력자라고 생각할 찰나 또 할아버지는‘가만 있어봐요. 조금 있다 돈실이가 올거에요. 돈실이가 200만 원을 꿔가고 안갚아요. 그러니 전선생이 증인 좀 서줘요’라고 했다. 증인이란 또 무슨 말인가. 칼국수를 먹으러 오라더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놀라고 있었다. 입에 모터를 단 듯 쉴새 없이 말하고 거침 없이 내뱉는 거친 언어 표현도 일상처럼 보였다.

 

그때 돈실이가 노크를 했다. 토실토실한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었다. 마을에서 부잣집 사모님으로 통하는 분이었다. 손에는 돼지고기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아 할아버지가 이 분이랑 이상한 돈거래를 하는구나 한눈에 짐작이 되었다. 그런데 돈을 빌린 게 아니고 돈을 꿔 줬다고? 오히려 할아버지가 돈을 빌릴 형편으로 보이는데 꿔 줬다니 이 상황도 이상했다.

 

돈실이는 방에 앉자마자 할아버지를 향해 방실방실 웃으며 ‘내가 고기 좀 사왔지잉. 오늘은 삼겹살 좀 구워드셔~ 다음달엔 멋진 티셔츠 하나 사 드릴게~…’아주 자연스러운 반말에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어 왔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그때 할아버지께‘200만 원 빌려 드렸다는데 이 분이 사오신 고기가 이자인가요?’라고 묻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떤 때는 먹음직스러운 김치까지 담가온다며 자랑이 늘어졌다.

 

꿔준 돈에 대한 이자 대신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들고 오니 할아버지는 그런 게 싫지 않았던 거다. 돈 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고 싶어했고, 돈실이 같은 이웃 아줌마들을 상대로 유치한 이자 놀음을 즐긴 거였다. 그런데 원금은 안갚고 매달 이자라며 먹을 것을 사들고 오니 할아버지는 혹시라도 원금을 떼일까 불안감이 앞섰고 그 자리 증거 확보를 위해 증인이 필요하다며 나를 부른 거였다.

 

나는 할아버지를 향해‘돈이 그렇게 많으셔요? 돈이 많으면 이렇게 방바닥에 깔아놓고 자랑하지 말고 은행에 넣으면 이자 따박따박 나와요’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눈을 세모로 치켜세우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은행을 어떻게 믿어요. 은행에 갖다 줄 돈 난 없어요. 이 돈 이렇게 매일 만져보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데…’ 할아버지가 은행에 돈을 맡기지 못하는 무슨 깊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저렇게 많은 돈을 정말 손수레 일을 해서 모은 돈일까. 그렇다면 수십 번 수백 번 배달하고 힘들게 돈을 모았을 건데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잘못 관리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후에도 할아버지는 마을 분들이랑 툭하면 싸움을 해서 경찰이 자주 출동했고 이웃들이 아주 고단해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아버지에게 약이 없네. 불치병이네. 치료가 필요한 중증이네 하면서‘폭군’이란 별명을 붙였는데 나는 할아버지 집을 가보서야 왜 이런 별명을 붙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운 얼굴에 순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나는 이름 석자는 쓸줄 알아야 한다고, 문맹은 탈출해야 한다고 한글을 가르쳐 보려고했으나 할머니의 의지도 박약하고 지능도 안되다보니 그것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할머니는 그냥 순박하기만 하고 수동적으로 소처럼 일만 하면서 할아버지 밥을 해주는 사람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후 또 며칠이 지났다. 할아버지 집에서 돼지고기 굽는 소리와 함께 돈실이가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온마을에 크게 울려퍼졌다. 그날은 돈실이가 돼지고기 한 근을 이자로 들고 온 날이었다. 또 어떤 날은 할아버지와 돈실이와 싸우는 소리가 온마을 울타리를 넘었다. 그런 날은 영락없이 돈실이에게 원금을 당장 갚으라고 쥐잡 듯이 하고 있었던 거다. 살림 넉넉해 보이는 돈실이가 참 끈질지게도 할아버지 돈을 안갚으면서 요리조리 피해 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걸 한껏 즐기는 할아버지도 이상했다. 그 옆에서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할머니는 삼시 세 끼 따끈한 밥을 해서 바치는데 할아버지 마음에 안들면 구박에 쌍욕에 구타가 날아온다고 울면서 온 마을을 헤매고 다니는 할머니를 나도 여러번 목격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통제가 안되는 별난 성격에 별난 돈자랑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이번에 코로나로-19 사태로 청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떤 분이 세상에서 돈이 제일 불결하다는 말을 듣고 소독을 한다고 5만원 권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홀랑 태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기사를 보자 괴팍하게 돈자랑을 낙으로 삼던 그때 그 시절 독불장군 얼굴이 지나간다. 어디선가 돈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에 콕 박혀 생생한 그때 일들이 자동으로 떠올라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오래전 나는 그 마을을 떠나와 이젠 그런 영화 같은 독불장군 이야기도, 폭군 이야기를 더 이상 보지도 듣지도 않게 되었다. 그때 벌써 백발 호호하던 할아버지의 이상한 돈자랑은 아직도 여전할까. 괴팍한 성격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