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2010, 월간 산 [감동산행기,아, 주왕산”… 이곳에 오는 이유를 알겠다!]

싱싱돌이 2011. 1. 6. 21:36

“아, 주왕산”… 이곳에 오는 이유를 알겠다!

 
한국인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한다는 주왕산은 어떻게 생겼을까? 휴일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매번 예약도 못 하고 종종 걸음을 쳤는데 이번엔 행운처럼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새벽 4시 30분, 요란한 알람소리에 부스스 눈을 뜨고 바쁘게 도시락을 싸서 기다리는 버스에 올랐다. 명산을 보려는 많은 회원들이 버스 두 대를 가득 메웠다. 명단을 확인하다 내 명찰이 두 개인 걸 발견했다. 잠시 후 나와  성·이름 한자 모두 똑 같은 분이 나타나셨다.

오늘 총대장님은 부재 중이셨고, 전철진 대장님이 친절히 산행안내를 해주셨다. 주왕산으로 달려가는 차창 밖엔 구름과 해님이 숨바꼭질을 하고, 초록물감을 칠한 듯 푸르던 산도 어느새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하며 감상에 젖어 있을 즈음 버스는 꼬불꼬불 고개를 넘어 주왕산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놓았다.

기념촬영도 하고 꿈에 그리던 주왕산에 발자국 도장을 꾹꾹 찍으며 한발 한발 올랐다.

얼마쯤 올랐을까? 땀이 비 오듯 내려 겉옷을 벗고 물도 한 모금 벌컥 들이키며 달기폭포에 관한 전설을 들었다. 초입부터 인산인해를 이루는 걸 보니 이날도 사람들이 많아 고행길이 될 게 분명했다. 비교적 잔잔한 산길이라 생각하며 오르는데 갑자기 급경사를 만났다. 다른 회원들은 씩씩하게 잘 오르는데 왜 나만 헐떡거리나? 운동 부족인가?

힘들게 깔딱고개를 치고 오르니 능선 위에서 시원한 꿀바람이 반겼고, 그제야 산세와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길도 포근한데 정말 주왕산 장관은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단풍은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잎새로 남아 있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너구마을 지나 금은광이 삼거리까지 갔는데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란다. 삼거리에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남 언니는 꿀맛 나는 따끈한 영양찰밥에 맛있는 반찬, 매실주, 과일 등을 챙겨와 아마 주왕산도 놀랐을 거다. 맛있는 도시락으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 나니, 이젠 히말라야도 뛰어넘을 기세다.

점심을 먹고 제3폭포까지 갔다. 그곳엔 수천 명이나 되는 듯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디 한 곳에 잠시 서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길게 떨어지는 폭포  앞에 서면 어느새 찰칵 사진을 담아주시던 변봉래 고문님. 사람구경인지, 폭포구경인지 여기저기서 행복한 아우성이 귀를 따갑게 했다. 사람들에 밀려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그제야 주왕산 장관을 만날 수 있었다. ‘아!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와 남근석, 산을 지키고 계신다는 할아버지신도 만나고 지금까지 멀리 고생하며 달려온 보람이 한눈에 보상되는 듯했다. 여태 만나지 못했던 신비로운 천국이 따로 없다. 신비로움을 눈에, 가슴에 열심히 담았다. 다음 사람을 위해 얼른 그 자리를 떠나 주는 것도 아름다운 양보인 것 같아 서둘러 내려왔다. 
▲ 주왕산 달기폭포 앞에서 일행과 함께. 오른쪽이 필자.
사람구경인지 폭포구경인지, 인파 몰려

주왕굴에 잠시 들렀다. 힘들게 온 산인데 주왕굴을 놓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주왕암, 주왕굴에 들러 마음도 정리하고, 또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각생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 뛰며 달리며 대전사까지 오니 주왕산 완주팀도 막 도착해 있었다.

대전사 넓은 뜰에선 국화차 시음회가 열렸다. 향긋한 국화차 한 잔 맛보니 음~ 좋다.

한 봉지에 1만5,000원. 좀 비싼 듯했다. 얼마 전에 싱싱한 국화를 사다 깨끗이 말려놓았는데 그 향기에 벌써 취하는 것 같다. 겨우내 향긋한 국화차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대전사엔 바쁜 발걸음 탓에 마음으로만 기도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왕산 입구엔 맛있는 부침개 냄새가 코를 킁킁거리게 했고, 사과를 통째로 둥둥 띄운 독특한 막걸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화중지병(畵中之餠·그림의 떡)이었다.

주왕산 입구에서 버스 있는 곳까지 왜 그렇게 멀든지. 산속에서 걸은 것보다 더 많이 걸었다. 혹시 꼴찌인가 싶어 눈썹 휘날리며 바쁘게 걸었더니, 발가락까지 아팠다. 중간에 500m 남았다는 안내표지를 봤는데 5,000m는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저만치 파란 버스가 보이고 화려한 전쟁 같은 하루가 모두 끝나는 순간이다.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정석 기사님이 맛있게 끓여 놓은 어묵탕에 막걸리 한 잔하니 하루 고단함이 눈처럼 녹아내렸다. 그때 저만치 돌의자에 두 기사님이 나란히 딱 붙어 앉아 숟가락질도 군대처럼 똑 같이 하는 재미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와 배꼽 잡았다.

‘청송에 가면 청송 사과를 사오라’는 말이 있다. 유명한 청송사과를 맛보니 기대를 많이 했던 터라 그런지 기대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회원들 하나둘 청송사과를 사서 버스에 싣고 나도 한 박스를 샀다. ‘싱싱돌이 애플’이라 써서 버스에 실었다. 예쁜 사과 하나 골라 기사 아저씨도 하나 드리고.

이제 지루함 없이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나 청송은 멀었다. 가을단풍철 절정답게 차가 밀리고,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더 걸렸지만 밤 12시에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와 별을 이고 집에 들어왔지만 가보고 싶은 산을 볼 수 있었다는 게 마냥 좋았다. 5시간 산행에 11시간 버스를 탄 날이었다. 

1호차, 2호차 90여 명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신 각 대장님께 감사하고,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 과거 애인(?) 찾느라 눈이 초롱거리던 순남 언니 모두 반가웠다.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막 잠이 들 무렵 휴대폰 문자가 들어왔다. 미소천사 점남 언니가 친절하게 ‘잘 들어갔어요? 오늘 고생했어요. 따뜻하게 잘 자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달콤한 잠에 그냥 빠졌다.


/ 안양시 만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