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발표작품 ◐

2023, 창작수필 여름호[잊을 수 없는 추석 송편]

싱싱돌이 2024. 3. 23. 21:21

2023, 창작수필 여름호[잊을 수 없는 추석 송편-전옥자]
 
지난 추석, 마을 재래시장에도 불이 났다. 허리 한 번 못펴고 장사에 여념없는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평소 문전성시를 이루던 떡집 앞에도 대기줄이 끝이 없었다. 국산 쌀을 사용해 떡이 맛있다고 소문난 떡집은 대목답게 인산인해였다.  
 
나는 긴 줄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소문난 떡집 송편을 ‘추석 아니면 언제 맛보겠어’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도 긴줄 꼬리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렇게 긴 기다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긴 줄을 서서 떡집 앞을 보니 국산쌀 포대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저 국산 쌀로 송편을 빚으니 떡이 그렇게 맛있는 거라고 떡집 자랑이 대단했다. 그러는사이 내 순서가 왔다.   
 
주문 받는 분이 로봇처럼 앞사람에게 했던 말을 나한테 똑같이 했다. '송편 어떻게 드릴까요?' 나는 '깨랑 콩이랑 반반 섞어 주세요' 라고 주문하자, 순식간에 송편 한 봉지가 눈앞에 척 놓였다. 이렇게 빨리 송편이 나오나. 긴 줄의 수고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날은 저물었고, 집에 오는 길에 휘영청 보름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집으로와 두근두근 송편 시식에 들어갔다. 검은콩 두-세알 들어간 콩송편은 별맛이 없었고, 깨송편은 밍밍했다. 이런 송편을 명품 송편이라고 하나. 생전 처음 맛보는 희한한 맛이었다. 이 때부터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제발 다음 송편은 속이 꽉 찬 맛있는 송편이길 기대하며 한입 물었다. 그러나 세 번째 송편마저 속에 아무것도 없는 공갈(거짓) 송편이었다. 요즘엔 속이 없는 송편이 유행인가. 설마 하나는 실수로 들어갔겠지. 마음 다독이며 또 하나 먹어봤다. 두 개 세 개,,,아무 맛도 없는, 속이 하나도 없는 연속 공갈 송편이었다.  
 
이제는 송편 2킬로그램을 식탁에 모두 올려놓고 공갈 송편 색출작업에 들어갔다. 송편을 반으로 가를 때마다 가슴 철렁한 이 감정은 대체 뭐지. 거의 속이 없는 송편에 충격이었다. 그냥 송편 모양을 낸 밍밍한 쌀떡이었다. 콩송편, 깨송편 몇 개 넣고 눈 가리고 아웅을 한 것이다. 너무 허탈하고 속상했다. 소문난 떡집이라는데 가장 중요한 정직과 양심은 다 어디 갔을까. 어쩌다 한 두개 들어간 게 아니잖아. 
 
바로 그 집에 전화했다. 예상대로 '어쩌다 한 두개 들어갔을 거예요.' 라고 했다. 결국 송편을 들고 헐레벌떡 떡집으로 뛰어갔다. 늦여름 더위가 대단해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송편을 찌는 가게 안에까지 들어갔다. 금방 찐 송편을 분류해 놓고 주문 받는대로 담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공갈 송편을 내밀면서 ‘어쩜 속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했더니 ‘왜 그게 거기 들어갔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미안해하거나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차오르는 기분 나쁨을 간신히 누르고, 나는 다섯 종류 송편중에 '요거 요거 주세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지목하고 직접 무게를 달아 송편을 다시 샀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혔다. 소문난 떡집 송편을 사는데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떡집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국산쌀 포대, 정말 저 쌀로 송편을 빚었을지도 의문이 생겼다.  
 
생각해보니 몇 년전에도 방앗간에 아주 쓰린 기억이 있다. 그해 사량도에 사는 지인이 해풍 맞은 싱싱한 쑥을 한 상자 보내왔다. 쑥향이 그만인 쑥을 데치고 쌀을 불려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방앗간 주인에게 맛있는 절편을 뽑아달라고 하자, 주인은 쑥양도 많고 향기도 좋아 환상적인 절편이 나올 거라며 나보다 더 좋아했다. 반나절 기다린 끝에 빛깔 고운 쑥절편을 생각하면서 방앗간으로 갔다. 
 
그러나 절편을 보는 순간 실망은 극에 달했다. 절편 빛깔은 쑥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구분도 안 될 정도의 희미한 연두빛 절편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절편 색이 왜 이러냐고 묻자, 주인은 ‘쑥양이 워낙 많아서 조금 덜어서 우리집 쑥떡에 넣어 사용했어요. 쑥이 워낙 좋네요’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때도, 이번에도 순식간에 코를 베어간 떡집의 기막힌 양심으로 추석이 너무 우울하게 지나버렸다.  
 
작년 추석 보름달은 백 년만에 아주 큰 둥근달을 볼 수 있었다. 그날 보름달을 못보면 또 37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니 귀한 보름달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안양대교 위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에게 간절한 나의 소원도 꺼내 빌고, 먹는 것으로 속상한 사람들 없게 해달라고 빌었다. 세상에 모든 떡집들이 속도 꽉 찼으면 정말 좋겠다고 진심으로 빌었다.  
 
보름달은 추석에도 많은 분들의 간절한 소원 접수하시랴 많이 분주하셨겠지. 그날 보름달이 나의 소원을 접수했다고 찡긋 미소를 보내며 산을 넘어갔다. 달님이 송편 때문에 속상한 나의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뚝 떨어졌다. 올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속담이 더이상 무색하지 않기를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