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2008, 월간 산[감동산행기, 웃음꽃 피우며 백두대간 종주]

싱싱돌이 2008. 7. 12. 12:40
월간 산 [2008. 7월호]
 
 [기사 본문  감동산행기]  웃음꽃 피우며 백두대간 종주
이번 종주는 당일 종주라 마음 부담이 덜했다. 평일과 다름없이 아침 5시 자동으로 눈을 뜨고 종주준비를 마쳤다. 어느새 버스에는 종주대원들로 꽉 찼다. 1년 동안 동고동락 해온 대원들을 한 달만에 다시 보니 반가움이 진했다.

버스에선 아침 특별식이 제공됐다. 맛있는 쑥떡과 식혜였다. 금방 방앗간을 탈출한 따끈따끈한 쑥떡엔 재숙 언니가 직접 캔 진한 쑥향과 점남 언니가 제공한 검은콩이 만나 훌륭한 맛을 냈다. 간이 딱 맞는 식혜와 더불어 아침을 든든히 해결했다. 잠시 후 매실즙이 품에 안겼다. 피로회복에 좋다는 싱싱한 매실즙이었다. 귀한 매실즙 한 모금 마시니 기운도 펄펄 솟았다. 총대장님이 오늘 일정과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셨다.

한 숨 졸고 났더니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또 바통 이어가듯 긴 종주가 시작되겠지. 종주 시작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혼자만 배낭을 떡하니 메고 있다. 순간 나로 인해 웃음바이러스가 확 퍼지고 말았다. 스트레칭 후 선두대장님 뒤를 따르다 은창이가 숲에서 나무지팡이를 찾아내는 바람에 웃음폭탄이 났다. 지난 종주 때 쓰고 고이 두고 왔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오늘 종주 시작은 까만 밤하늘이 아닌 환한 낮에 걷는다는 게 일단 좋았다. 한참 힘겹게 오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때마침 선들 불어주는 꿀바람이 어찌나 고마운지. 서로 칭찬과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포근한 길을 걷다 버찌나무를 만났다. 까만 열매 앞에 다닥다닥 붙은 대원들 눈빛을 보니 이성을 잃었다. 깊은 산중에서 한 줄기 옹달샘 같은 버찌를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입안 가득 버찌 물들이고 또 걷고 또 걸었다.

대간 길에 묘소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어느 묘소 앞에는 장미나무 한 그루에 얼굴만한 장미가 활짝 웃고 있었다. 아마도 돌아가신 분이 생전 장미를 좋아하셨을 것 같았다.
유일하게 우리 팀만 단독종주를 하고 있는 길에 고마운 몇 분을 만났다. 정글처럼 우거진 길에서 나무도 베어내고 나뭇가지도 쳐주고 우리가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고 있었다. 조금 후에 또 하나의 선물, 오디를 만났다. 새까만 오디가 가득 매달린 뽕나무에 수십 개의 손과 입이 초를 다투었다.
 점심식사 후 회원들과 화룡재 정자 밑에서 단체로 기념촬영했다.
오르막 내리막 코스를 지날 때 모두 조용히 거친 숨 몰아쉬며 걷는데, 그 묵묵함을 깨는 한 마디 다람쥐님의 익살스러움이 있었다. 노래를 한 소절 부르는데 생전 처음 듣는 노래다. 작사 작곡도 훌륭하다.

어떤 대원 발을 보니 맨발이었다. 다년간 훈련이 되어서 괜찮다고 한다. 한 고개를 주욱 넘었더니 ‘계란후라이꽃’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하얀 꽃 속에 노른자위가 있다. 영화 ‘형아’에서 어린 주인공이 그 꽃을 ‘계란후라이꽃’이라 부른 이후 나도 그 꽃만 보면 그렇게 부른다.

윤지미산에 도착했을 때 재미있는 산이름으로 저마다 생각들이 웃음꽃을 피웠다. 처음엔 ‘김지미산’이었는데 윤지미에게 팔아 ‘윤지미산’이 되었단다. 그곳엔 종주의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색색 리본으로 인사하고 있었다.

발밑엔 넓적한 취나물이 자주 보였고 색깔 진한 나리꽃도 활짝 피어 방글거리고 있었다. 포근한 길을 쉼없이 걷다 노랑물결 밭을 만났다. 산을 둘러싸고 있는 노랑 꽃밭이 햇살과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코스모스처럼 생겼는데 무슨 꽃일까? 변 고문님은 그 꽃은 소련코스모스라 알려주셨다. 노랑 꽃밭에 사뿐 내려앉은 언니들이 코스모스 보다 예뻤다.

화룡재 구간 18km 8시간 걸려

갈증도 더해가고 배도 고파오는데 드디어 점심시간이 왔다. 화룡재 시원한 정자 그늘 밑에 쭉 둘러앉아 올망졸망 도시락을 풀었다. 사방 녹음 짙은 산을 바라보며 재숙 언니가 따끈한 된장국을 제공해 밥은 더 꿀맛이었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즐긴 후 한숨 자고 싶었지만 종주를 재촉했다. 이번엔 통통한 보리 황금물결을 만났다. 통통한 보리가 많은 사람들이 밟아서 아파하고 있었다. 보리를 다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을텐데. 아쉬웠다.

민가엔 소만한 개가 있어 어찌나 놀랐는지. 다행히 순둥이처럼 사람 보고 짖지도 않아 삼십육계 도망가진 않았다. 오후 되니 햇살이 뜨거웠지만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주고 양산 역할을 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절벽을 만날 땐 당황되지만 이젠 의연하게 대처하는 힘도 길렀다. 숨이 목까지 차서 헐떡거리다 보면 바로 꿀바람이 불어주고, 땀이 날만 하면 바람이 모두 거두어 갔다.

사방이 녹음으로 둘러싸인 대간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절경을 눈 속에, 가슴 속에 터지지 않을 만큼 가득 담고 또 담았다. 두려운 것 한 가지 있다. 수풀을 뚫고 남녀 구분되는 행사를 할 때다. 혹시 뱀이나 벌레에 물리지나 않을까 무섭기만 하다. 긴 시간을 걸으며 인내를 배우고, 동료애를 느끼며,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오늘은 넘어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상운 언니 앞에서 꽝 넘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긴 드라마 같은 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버스가 보이는 도로에 발이 닿았다. 휴~ 한숨을 토하는데 선두대장님이 고생했다며 반겨주셨다. 버스쪽으로 이동하니 구수한 누룽지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거기다 곰삭은 갓김치, 싱싱한 배추겉절이가 환상적인 맛을 냈다.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해 준 막걸리, 기본이 석 잔이어야 한다고 해서 나도 석 잔 마셨다.

맛있는 누룽지를 정신없이 먹는데 뒤늦게 도착한 후미팀. 갑자기 좋은 이웃님이 애들은 가라 하며 뭔가를 흔들었다. 무심코 쳐다본 여성동무들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무서운 뱀이 페트병에 담겨있었다. 동작 빠른 뱀을 어떻게 잡았지? 아무튼 손도 대지 않고 잡았다는 뱀. 돌아올 때는 산속으로 다시 돌려보내주고 왔다.

코 밑이 헐고 감기기운 있었는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없다. 그런데 어깨, 팔뚝, 다리 할 것 없이 안 쑤시는 곳이 없다. 다음부턴 배낭을 이고 다니는 방법 좀 연구해야겠다. 그래도 어느 종주보다 폭소가 많았던 산행이었다. 오늘밤엔 무서운 뱀꿈 꿀까 걱정이다.  내일은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보낼 것 같다.

일년 동안 같이 해온 이 종주팀은 조용하면서 잔잔한 매력을 폴폴 풍긴다.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들. 좋은 사람들이 멋진 꿈을 이뤄가는 우리 TS안양산악회 백두대간 종주팀, 완주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파이팅!


/ 싱싱돌이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