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2007, 월간 산[감동산행기, 한 달에 한 구간씩 대간 도전]

싱싱돌이 2008. 7. 12. 12:37
월간 산[2007. 8월호]   [기사 본문  감동산행기] 한 달에 한 구간씩 대간 도전
어제까지 태풍소식이 있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 오늘 태풍이 비껴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대원 안전을 위해 어제 대장님은 강한 태풍을 뚫고 사전 답사를 다녀오셨단 말씀을 듣고 그만 콧날이 시큰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날씨는 백두대간의 신성한 꿈을 이루기 위한 우리 종주대원에게 하늘에서 내려주는 축복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눈 좀 붙이는 사이 버스는 밤새 달려 새벽 3시30분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했다. 별을 유난히 좋아하는 난 지리산 밤하늘에 총총 내리는 별과 반딧불을 보며 깡총거리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산악회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먹고 새벽 4시 헤드랜턴을 밝히고 대장님 뒤를 따랐다. 한 사람 겨우 발 디딜 정도로 좁다란 산길, 키 보다 휠씬 높은 수풀, 질퍽한 흙바닥길, 어제 비가 어느 정도 내렸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경사 심한 길을 걷다 그만 꽈당, 지리산이 울릴 정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닥 질펀한 흙이 오른쪽 바지에 철썩 달라붙어 엉망이 되었다. 초반부터 지리산 땅을 모두 사다시피 하니 무난하게 긴 종주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따랐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산악회 회원들과 기념촬영 했다.
약 1시간쯤 올랐을까? 동쪽 하늘엔 햇님이 뾰족 인사를 했다. 대원들 입에선 계속 감탄이 이어졌다. 그 감동이 종주의 꿈을 꾸고 있는 백두대간에서 볼 수 있는 일출이라  더욱 진했다. 더구나 지난 제2구간 때 아쉽게 접어야 했던 일출을 제3구간에서 볼 수 있으니 큰 기쁨이었다. 지리산 하늘 아래 첫 새벽 첫 닭 우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고, 앞뒤를 둘러봐도 우리 종주팀밖에 보이지 않아 누구도 밟지 않은 백두대간을 내가 먼저 발자국을 내며 간다는 자부심도 컸다.

그때 어둠을 뚫고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텐트와 침낭 속에 꿈틀거리는 몇몇 이방인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위해 지난밤 이슬 맞으며 별과 달을 보며 그렇게 보냈으리라. 난 하이톤으로 그들에게 “하이~”라고 인사했고, 그들도 우리에게 힘내라며 큰 웃음과 힘찬 파이팅을 보내주었다. 산에서 만나는 누구도 서로가 친구가 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겸손과 미덕은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걸 배워간다. 고된 종주를 하다보면 말없이 오르고 또 오르고 난 그 때마다 유머 한 방을 쏘아 지쳐있는 대원들에게 깜짝 웃음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늘도 보이지 않게 난 긴 숲터널을 지날 땐 숲에 눈을 다칠까 팔에 상처라도 날까 조심조심 움직였다. 더운 날씨 탓에 목은 더 심하게 탔고, 배에선 배꼽시계가 자꾸만 울렸다. 수시로 간식과 물을 꺼내 먹으며 갈증을 해소했고 길게 쭉쭉 뻗은 노송 앞에서 에어컨 바람도 무한대로 맞아 보았다.

지리산 신선한 공기를 콧속 가득 담아오려 코 평수를 크게 넓혀 킁킁거리는 내 몸짓에 옆에선 박장대소하느라 정신없었다. 내려오는 중간에 확확 불타는 발을 얼음계곡물에 담가 발 피곤을 덜어내다 깜짝 놀랐다. 엄지발가락 피부가 모두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발목에도 온통 땀띠가 촘촘 열리고, 배낭 맨 등쪽에도 빨간 땀띠가 열꽃처럼 피었다. 그래도 이쯤이야 감내해야 하는 고행의 종주 아니던가.

대원들 중엔 관절이 아파 고생하고 무리한 종주에 탈진상태로 고생하는 대원도 있었지만, 모두 자신과 싸워 이겨내는 모습이 마음 짠했다. 좁다란 길을 오는데 그제서야 반가운 다른 종주팀들이 구슬땀 흘리며 오르고 있었다. 그들도 역시 양보의 미덕과 먼저 인사 건네는 매너도 으뜸이었다.


얼음계곡물에 발 담가 피곤 덜어


이른 새벽부터 종주를 시작한 지 몇 시간 지났는지 모른다. 오늘 목표 절반은 이뤘을까. 딩동댕 점심시간이 되었다. 각자 챙겨온 도시락을 한데 모으니 잔치집이 따로 없었다. 너무나 지친 탓인지 진수성찬 도시락 앞에서 현기증이 났다. 아까부터 아파오던 검지발가락 통증과 겹질린 발목통증이 견디어줄지 살짝 걱정되었다. 와인과 점심만찬을 먹고 남은 종주를 포기할까? 순간 이런 생각도 했지만 중간에 포기란 내 사전에 없다.

정말 다행스러운 건 점심 먹고 나면서부터 바닥길이 쿠션처럼 포근하게 느껴져 발목의 무리도 덜했다.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사이 기운 다 떨어진 우리들에게 용용돌이님의 등장은 활력소가 됐다. 소대장 용용돌이님 구호에 따라 돌이돌이를 외치며 지루함을 달래 행군은 계속되었다.

우리 돌이군단은 정말 대단한 집단이다. 삼삼돌이 팔팔돌이님 내외분은 환갑을 넘은 연세에도 젊은 일행들 보다 더 씩씩하게 종주를 해내시며 모든 면에서 삶의 지표가 되어주신다. 탱탱돌이님은 내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며 나약해져 있는 내게 백두대간 종주에 힘을 실어주신다. 만세돌이님은 자신을 녹여서라도 남부터 생각해주시는 마음 넉넉한 분이시다. 장군돌이는 장군의 아들답게 늘 신사도 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정말 멋진 청년이다.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종주한다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종주시간은 12시간 예상이었지만 예상보다 빨랐다. 고된 하루 백두대간 제3구간이 성공되는 순간이다. 10시간 이상 쉼없이 운전해 준 발에게 고마운 뽀뽀세례를 퍼부어 주었다. 오늘 목표 26km를 성공하고 도착지점에 오니 맛있는 삼계탕 향기가 온 지리산에 퍼졌다. 오늘이 초복이라고 고생한 대원들을 위해 산악회에서 마련해준 특별 영양식이었다. 푹 고아낸 영계는 어찌나 꿀맛이던지 삼계탕에 소주 한 잔씩 부딪치며 고단한 일정을 접었다.

텔레비전에선 대한민국과 바레인 축구예선전을 하고 있었다. 응원도 해야 하는데 허벅지와 팔엔 쇠를 매단 듯 무겁고, 눈은 반쯤 감겼다. 오늘은 깊은 단잠에 푹 빠질 것 같았다.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난 한강 횡단의 꿈, 마라톤의 소중한 꿈 모두 이뤄냈고, 이젠 새로운 도전 백두대간의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섰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직장인으로서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이어지는 백두대간 종주. 부지런히 체력관리를 해 다음달 제4구간 도전에서도 가슴 짠한 감동을 내 자신에게 한 아름 안겨줘야겠다. 우리 사무실에선 제4구간을 성공하고 돌아오면 특별 영양식을 사줄 거라며 응원과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어 정말 고마웠다. ‘멋지게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처럼 나의 멋진 꿈 이루는 그 날까지 나의 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 싱싱돌이   경기도 안양시 석수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