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해운대 친구<해군지 12월호>
♡2024. 12/2(화)♡[해운대 친구, 해군지 12월호, 전옥자]
해운대를 언제 가봤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얼마전 부산에 살고 있는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너랑 나랑 생일 이틀 차이인데 우리 집에서 합동 생일 어때? 해운대에서 가요제도 열리는데 올래?.’ 라고 했다.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야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친구가 이렇게 깜짝 초대를 한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부산행 KTX 특실에 올랐다. 내 좌석은 1인 좌석이었다. 바로 옆 자리엔 아이들이랑 엄마가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쉴새없이 울고불고, 엄마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기차 낭만을 오롯이 누리고 싶은 나의 기대는 물 건너갔다. 잠을 청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칭얼대는 소리만 듣다가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역, 친구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빨간색 차를 보니 성격 밝은 친구란걸 금방 알겠다. 친구는 부산에서 차 색상, 번호가 특별해서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웃었다. 친구집은 바로 코앞이 해운대 비치였다. 바로 옆은 해운대의 명물 초고층 빌딩이 우뚝 서있고 어딜 쳐다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친구가 직접 생일상을 차렸다. 미역국을 끓이고, 회를 뜨고 맛있는 문어에 밑반찬까지, 집밥 한 상을 감동하며 먹었다. 밤엔 해운대 백사장에 펼쳐진 가요제, 버스킹, 전통시장, 드론 불꽃쇼를 감상했다. 조선비치호텔 앞에 서니 그때 추억이 지나갔다. 그해 겨울 나는 수영장 회원들과 생애 처음 ”북극곰 수영대회“에 참가했다. 그날 친구가 지인들과 그곳까지 응원하러 왔었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축포가 터지고 호루라기 신호와 함께 일제히 바다에 입수했다. 심장 쇼크가 날 것 같은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입수하자마자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함께 갔던 회원들이 하나 둘 포기하자 바다에 혼자 떠있는 것처럼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나는 ‘포기’ 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수영 훈련도 열심히 했으니 ‘견뎌보자, 얼어죽기야 하겠어’ 심지를 꽉 붙잡고 헤엄쳤다.
얽히고 설키고 입, 코로 달려드는 짠 바닷물과 사투를 벌이며 반환점을 돌았다. 그때 물밖에서 영차영차 응원소리가 크게 들렸다. 울컥했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힘겹게 결승점에 도착했다. 눈물 콧물 범벅인채 물밖으로 나오니 덜덜 떨리는 어깨 위에 대형타월이 날아왔다. 그리고 조선비치호텔 사우나에서 따끈한 찜질로 꽁꽁 얼었던 그날의 고단함을 녹였다.
지금 생각하면 한겨울에 겁없이 바닷물에 뛰어들었던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왔을까. 내 생애 잊지 못할 경험을 준 바다에 와서 그날을 추억한다. 아직도 어딜 가면 북극곰 이야기가 등장하고, 우쭐대며 자랑하는 걸 보면 내 생애 아름다운 '도전' 으로 기록될만하다. 짜릿했던 그해 겨울바다는 아름다웠다.
전면 통유리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조선비치호텔 앞 백사장에서는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귀에 익숙한 음악에 이끌려 달려갔다. 내가 요즘 홀딱 반한 곡,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를 열창하고 있었다. 임영웅 가수도 좋지만 노랫말이 참 예쁘다. 해운대랑 어울리는 힐링 선곡이 참 좋았다.
다음 곡으로 ‘해변의 여인’ 을 신청했지만 버스커가 잘 모르는 곡이라고 했다. 해운대에서 ‘해변의 여인’을 들었다면 좋았겠지만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노래 선물로도 고마웠다. 지금도 흥얼댄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 사랑해요. 사랑해요. 날 믿고 따라준 사람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요’
이어 부산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해운대 전통시장을 돌았다. 상점마다 외국인들이 인산인해였다. 우리나라의 매력에 반해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좋은 문화를 잘 보고 배워갈 수 있도록, 나도 그들에게 친절히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구촌 사람들이 북적대는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젊음도 만끽하고 열대야도 잠시 잊었다.
밤엔 별빛달빛 보면서 해운대 둘레길 걷는 낭만도 쏠쏠했다. 바다 야경에 취해 회포를 풀다보니 밤이 깊었다. 친구는 영화처럼 남편을 만난 이야기부터, 산전수전 살아온 인생 경험을 술술 풀어놓았다. 나는 닭알 두 판의 나이가 코앞인데 그동안 인생 잘 펼쳐왔기 때문에 지금 행복한 순간을 맞은거라고 맞장구를 쳤다. 나의 고단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울어주던 친구랑 ‘친구 최고’를 외치며 밤새 과음을 해버렸다. 친구가 다음날에 싱싱한 해산물 한 상을 준비했는데 눈으로만 먹었다.
해운대에서 눈부신 아침을 맞았다. 매일 눈 뜨면 파란 바다가 보이는 이런 멋진 곳에서 산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이른 아침에 해운대를 찾은 사람들, 레이더 망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예쁘다. 멀리서 온 손님인 내게 뭐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친구의 이웃분들, 귀여운 부산 사투리도 정겨웠고, 이웃간의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코앞에 파란 바다가 있고, 즐길 거리 많은 해운대에서 1박2일이 지났다. 친구랑 작별할 시간, 친구는 양손이 무겁게 선물을 주면서 하루 더 묵고 가라고 붙들었다. 사방 해운대를 품고 사는 친구의 품도, 친구 남편의 품도 바다만큼 넉넉했다.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도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 이런 친구가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는 40년의 우정, 나의 오랜 친구라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