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돌이기록◑

제 52회 신사임당의 날 기념예능대회<그해 여름>

싱싱돌이 2020. 10. 21. 21:17

♡2020. 10.8(목)♡[제 52회 신사임당의 날 기념예능대회-수필부문 입선]

 

시상식이 없는 대신 택배로 상장을 받았다.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많다. 마스크, 텀블러, 앞치마, 시장 바구니, 생강차, 치약,칫솔, 티슈 등 한박스...소소하게 필요한 것들<감사>

 

<숨 돌릴 틈 없었던 그해 여름-전옥자>

이글이글 그해 여름은 무지막지 더웠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거리던 날 동료와 충주에 출장을 가게되었다. 전날 회식이 늦어지는 바람에 잠도 부족하고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고속도로는 휴가철답게 피서차량들로 넘쳤다. 남들은 휴가를 떠나는데 이건 휴식을 즐길 틈도 없이 엉덩이 땀띠나게 일만 하는구나. 투덜거리며 떠난 출장이었다.

 

충주에서 종일 복닥대면서 출장업무를 마쳤다. 홀가분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이제 올라오는 일만 남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고단함이 몰려오고 눈꺼풀은 내려앉고 잠은 비오듯 쏟아졌다. 어느새 자정이 다가오고 성남시 어느 산자락까지 달려왔다. 산길을 굽이굽이 달리다보니 저 멀리 산속에 흐릿하게 불빛이 새어나왔다. 우리는 불빛이 보이는 반대 방향에 차를 세웠다. 동료는 조용한 곳에서 선선한 산공기를 마시며 딱 5분만 쉬다 가자고 했다. 차를 길 한쪽에 세우고 창문을 열자 한낮 더위는 온데간데 없고 산에서 불어오는 꿀바람은 하루 고단함을 씻어주는 듯 기분까지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새 사르르 달콤한 꿈길을 걸을 찰나 어디선가 은은한 노랫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피곤해서 그런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동료 역시 아까부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눈을 번쩍 떴다. 정말 아무리 들어도 가느다란 여자 목소리에 처량한 노랫가락이었다. 산은 온통 깜깜하고 사람 코 하나 안보이는데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이상한 노릇이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나고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다. 저 앞에 보이는 불빛 말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얼른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가늘고 뚜렷한 여자 목소리에 노랫가락이 지속적으로 들렸다. 노랫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가만히 기울이니 어머 깜깜한 적막강산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동료는 귀신이 곡을 하겠다며 얼른 그곳을 떠나자며 재촉했다.

 

정말 귀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칼이 온통 곤두서고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차를 몰았다. 정신을 온전하게 차릴 틈도 없이 오직 그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순식간에 차는 안양시내 쪽으로 접어들었다. 동료도 나도 식은땀으로 옷은 흠뻑 젖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 꽁무니에 뭔가 달라 붙어있는 것 같고 정신이 반쯤 빠져나갔다.

 

다음날 출근해 어젯밤 성남 산자락에서 경험한 영화같은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흥분하며 들려주었다. 귀를 기울이며 재미있게 듣던 직원들은 일제히 폭소를 떠트렸다. 아니 ‘왜 하필 공동묘지 앞에서 휴식을 하셨대요. 밤에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 이상한 소리 들었다는 분들도 많던데...’

 

어머나 그랬던거야. 맥이 빠졌다. 정말 그날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분명 여자의 노랫가락 소리가 또렷했는데...낮에도 가끔 지나다니던 그 길이 공동묘지 앞이라는 걸 왜 생각 못했을까. 그때처럼 무서운 공포는 난생 처음 경험한 아찔한 일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해마다 여름 휴가철만 오면 그때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살갗에 소름이 확 솟는다. 그리고 장거리를 떠날 때는 잠을 충분히 자고 고단하지 않게 다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 생애 아주아주 무서웠던 오싹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밤에 지날 때는 여전히 무섭다. 그런데 이글이글 더울 때는 그해 여름 공포를 상상만 해도 더위를 쫒는데는 효과는 좋다.

 

올 여름은 집콕하느라 이런 드라마틱한 추억 하나 못만들고 한계절이 흘러갔다. 덥고 힘들어도 그때 오싹 경험 한자락 꺼내 폭염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전부였다. 힘들게 버티고 견디면 무서운 전염병이 싹 도망갈까. 그러나 그때 귀신 노랫가락 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으로 정말 어떤 여유를 부릴 틈도 없다.

 

어느새 집은 단순하게 쉬는 공간이 아니라 쉼터, 일터, 휴양지, 카페, 영화관 등 다양한 역할을 해주는 곳으로 일상을 온통 바꾸어 놓았다. 내가 바리스타가 된 거처럼 커피를 내리고 향기를 음미하고 집안에 커피향기를 피우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먹고 덤비면 못하는 요리가 없다. 요즘처럼 집밥이 많을 때 뚝딱 할 수 있는 요리도 은근 많다. 시장에 갔다가 고구마순을 두 단을 덜컥 샀다. 가끔 할머니가 까놓은 고구마순을 사면 한줌 밖에 안되는 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오늘은 고구마김치를 담을 생각으로 두 단을 샀는데 양은 어마어마했다. 일단 고구마순부터 잘라내고 줄기를 데쳐서 껍질을 까고 밤까지 고구만순이랑 씨름을 했다. 찹쌀풀을 쑤워 반은 김치를, 반은 볶음을 했다. 숙성된 김치는 아삭아삭, 볶음은 쫄깃쫄깃 그 맛에 홀딱 반했다. 고구마김치는 제철 요맘때 아니면 먹기 힘들다. 백종원 요리연구가는 고구마껍질에 섬유소가 많다고 그냥 먹으라고 하는데 나는 까다롭게 껍질을 일일이 다 벗겼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고단한 노동 뒤에 귀한 맛이 따라오는 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봄여름 실종, 가을은 그래도 온전하게 맞을 수 있을까 그런 틈을 기대했으나 또 어렵다. 예전처럼 틈 없이 추억을 더듬으며 옛정을 나누고 여러사람이 어울려 오순도순, 알콩달콩하던 일은 앞으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무서운 경험은 많았지만 지금 힘든 시절보다 그때 서로 정답던 옛날이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