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발표작품 ◐

2019, 창작수필 여름호[첫 해외연수, 그때 설렘]

싱싱돌이 2019. 6. 1. 21:35

 2019, 창작수필 여름호[첫 해외연수 그때 설렘-전옥자]

 

다음 달이면 동료는 외국 장기여행을 떠난다. 일과 여행을 놓고 고민하던 동료는 여행을 결정하고 과감히 사표를 제출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에 한껏 들떠있는 동료를 보니 첫 해외연수 시절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푸릇한 20대 사회초년병 티를 팍팍 내며 좌충우돌할 때 직장에서 싱가포르 도로 사정을 배우고 오라는 벤치마킹 명령이 떨어졌다. 연수 일정이긴 하지만 딱딱한 공간을 벗어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게 좋았다. 나는 몇차례 해외연수 경험이 있었지만 함께한 동료들은 해외는 처음이라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신기함에 빠져 조잘조잘 여념이 없었다.

 

비행기는 잘 날고 있었고 기다리던 기내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아까부터 울렁거리던 속이 거북해 맛있어 보이는 기내식이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함께한 동료들은 너무 맛있다며 폭풍 흡입하는데 나 혼자만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어쩔줄 몰랐다.

 

평소 멀미가 좀 있긴 했지만 오랜만에 타 본 비행기에서 그 치명적인 멀미가 되살아날 줄 몰랐다. 나는 동료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화장실로 피신을 했다. 일단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는 일이 시급했다. 당시 항공드라마 파일럿이 인기를 끌었는데 나는 이 배경음악을 좋아해 매일 흥얼거리곤 했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려고 비행기 화장실에서 나는 주문을 외우듯 이 노래를 크게 불렀다.

 

그것이 끝이라고 우린 믿지 않았지. 너 떠난 텅빈 활주로에 쏟아지던 너의 목소리.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예감을 해맑은 웃음 지으며 대신한 너의 슬픔들. 오해는 이제 그만. 상처 주는 일도 그만.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게 달려와 줘. 너를 뜨겁게 안고서 두 팔이 날개가 되어 언젠가 네게 약속했던 저 달로 우리 푸른 꿈 싣고서 한없이 날아오르게. 사랑해 너를 하늘 끝까지

 

목이 터져라 몇 번이나 반복해 불렀던 것 같다. 그때 울렁이던 속이 슬금슬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즐겨 불렀던 노래를 반복해 부르며 간신히 멀미를 재웠다. 고생 끝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 돌아와 싸늘하게 식은 기내식을 한입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기내 음식을 하마터면 못먹을 뻔 했다.

 

비행기는 우리를 싱가포르에 내려놓았다. 싱가포르 첫인상은 전신주가 보이지 않아 너무나 깔끔했고 껌을 함부로 버리면 벌금을 물리는 나라답게 기초질서가 엄격했다. 묵었던 호텔도 우리들의 고단함을 녹여주려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향기 나는 입욕제에 목욕물을 받아놓고 풍부한 열대과일을 수시로 공급해주며 최상의 기분을 위해 애써주었다. 바탐섬 배 위에서 바다를 벗삼아 먹었던 바닷가재의 환상적인 맛도, 싱가포르 현지인들이 발음 정확하게 우리말로 불러주던 돌아와요 부산항의 노래도 어찌나 구슬프게 들리던지 콧날이 시큰했었다.

 

여행중에 우연히 독일에서 온 나이 지긋한 치과의사를 만났다. 엄마처럼 자상한 미소가 돋보였던 독일 의사선생님과 우리 일행은 한때 여행을 함께 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웠다. 독일문화와 우리문화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후 독일 선생님과 오래 편지를 주고 받으며 국경 넘은 우정을 나눴다. 이 글을 쓰면서 방글방글 웃음이 매력적이었던 그때 독일 의사선생님 얼굴이 아른거린다.

 

바탐섬에서는 꼬마들이 한국 사람들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이브자리 까르르 이브자리 까르르를 외쳤다. 눈망울이 슬픈 꼬마들이 외치는 저 소리는 대체 무슨 말일까 가이드에게 물으니 천 원만 주세요뜻이라고 했다. 어린 꼬마들의 사슴 눈빛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지나온 나의 길을 잠시 멈춰보면 나는 그동안 바빴고 힘들었고 슬펐고 또 고단했다. 희로애락을 듬뿍 녹여 만든 드라마처럼 살았다. 그 속에서 소소한 여행이 삶의 쉼표가 되어주었기에 한숨 돌리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설렘 가득했던 첫 해외연수 그때 순수로 똘똘 뭉쳤던 얼굴들이 보고 싶고 그립다. 살면서 첫 연수 때 설렘 가득했던 그 순간순간을 또 경험할 수 있을지.

 

여행은 낯선 문화권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혼자 힘으로 견디는 법과 각국의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게 내가 여행하면서 얻은 지혜이기도하다. 행복이 뭐 별건가. 걱정 근심 없이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지. 여행은 여럿이 떠나면 여럿이어서 재미있고 혼자 떠나면 혼자 떠나는 맛이 있어 즐거운 거니까.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나는 동료는 세상 근심걱정 다 내려놓고 여행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그 용기가 멋있고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