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2009, 월간 산 [감동산행기, 눈꽃 절경 즐긴 덕유산 송년산행]
싱싱돌이
2009. 2. 24. 15:12
월간 산 2009. 2월호 [기사 본문]
- [감동산행기] 눈꽃 절경 즐긴 덕유산 송년산행
- 지난주 수영하다 왼쪽 손가락 부상을 당해 이번 백두대간은 자신 없었다. 정상 컨디션으로 굳게 다짐하고 떠나도 마음이 약해지는데 어쩌나? 그때 상운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사정을 말해 보지만 상운 언니 본인은 더 악조건을 달고 대간 차갓재~하늘재 20구간으로 떠나는 것이니 같이 가자고 한다.
지난해 12월20일 일이다. 다른 때보다 훨씬 적은 대원들이다. 연말 바쁜 일정이 느껴진다. 버스는 어둠속을 달려 차갓재에 21일 새벽 3시에 도착했다. 눈 비비고 나눠주는 김밥을 먹는데 바로 새알심 넣은 팥죽이 돌았다. 오늘이 동지라고 정성들여 쑤어 온 ‘재숙언니표’ 팥죽 정말 맛있었다.
장비를 꼼꼼 챙기고 헤드랜턴 밝히고 총대장님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산행이라 그럴까? 숨도 가쁘고 힘들기만 했다. 타박타박 좁은 오르막길 오르는데 앞에서 “머리 조심하세요” 하는 순간 머리에 스파크가 일더니 정신이 아찔했고, 금세 달걀만한 혹 하나가 생겼다. 두꺼운 모자를 쓰지 않았으면 큰 부상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백두대간 길엔 누워 계시는 나무가 이리도 많은지.
초반부터 나무에 헤딩을 해대고 앞은 깜깜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만큼 오르다 보니 땀이 줄줄 흘렀다. 예상외로 춥지 않은 날씨가 종주를 도와주고 있었다. 겉옷을 벗고 목도 축이고 걷고 또 걷고…. 모든 대원이 꿋꿋하게 잘 가고 있는데 나만 거친 숨 몰아쉬며 입에선 “아휴”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늘에선 눈발이 쉴 새 없이 내리더니 금세 발밑에선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종주길이 아니라면 분명 환호성 지르며 좋아했을 눈인데 싶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 눈이 많이 내려 걱정부터 앞섰다. 발목까지 수북하게 덮이는 낙엽과 설탕 같은 눈이 어우러져 종주길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앞에서 꽝, 나도 꽝, 뒤에서도 꽝 지축을 흔들 만큼 요란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아무리 넘어지지 않은 장사라도 이렇게 미끄러운 길 온전하게 지나온 대원은 없는 것 같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 때마다 뒤에 오던 상운 언니가 넘어지는 횟수까지 세어 준다. 9번, 10번, 11번…,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동통 엉덩이 낙엽에 수시로 내주었더니 얼얼하고 아프다. 그래도 쿠션 좋은 엉덩이 탓에 큰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밧줄 매달린 경사 깊은 길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바위에 살짝 내려앉은 눈이 매우 미끄러웠고, 발을 잘못 딛기라도 한다면 바로 낭떠러지이니 엄청난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다리 달달 떨며 공포와 싸우고 바위 구간을 간신히 지나 걷고 또 걷고 걸었다. 많은 바위와 사각거리는 낙엽과 싸우다 보니 에너지 소비도 많았나 보다. 배꼽시계는 초라한 소리를 냈다.
앞에 가시는 송암님께 “지금 몇 시예요?” “아~ 밥때 됐어요.” 내 배꼽시계는 너무나 정확하다. 종주 시작 7시간쯤 흘렀을까. 지친 발걸음 쉴 수 있는 런치타임이다. 바람 잔 곳에 자리를 잡고 오순도순 점심을 먹었다. 보온 도시락도 매운 추위에 효능 없었다. 따끈했던 밥이 찬밥이 되었다. 점심 먹고 따뜻한 물로 추위를 달래고 남은 종주를 서둘렀다.
얼마큼 가다 보니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를 만났다. 먼저 오른 대원이 위에서 잡고 뒤에서는 밀어주었다. 자신의 몸무게에 배낭 무게까지 더해진 무거운 여성 대원들 한 명 한 명 끌어올리느라 다람쥐님 기운도 다 빠졌다. 그런데도 명랑한 얼굴을 보여주신다.
산에선 기상조건을 예측할 수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햇살이 비추어 더운 기온 확 느껴져 겉옷 벗고 걷는데 금방 눈발이 휘몰아친다. 우의를 꺼내 입고 걷다 보면 하늘엔 금방 먹구름과 안개가 자욱 몰려오고 윙윙 부는 바람이 스산하기까지 했다. 산은 수시로 다른 얼굴을 하니 비상 장비는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특히 겨울 종주는 어느 때보다 부상도 잦다.
이번 종주길에도 우리 대간팀이 유일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낙엽을 쓸며 길을 뚫으며 걷는 길이다. 낙엽 밑에 숨어 있는 살얼음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니 이젠 허리도 아파왔다. 벌써 종주 시작 10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반가운 메아리가 들렸다. 1시간30분 후면 도착이라고. 손뼉 치며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것도 잠시, 산 하나 넘고 나면 또 하나 산이 반긴다. 하산하면 기막힌 특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힘내라며 용기를 주었지만 너무나 지쳐 그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운이 다 빠져 있을 때 안개 자욱한 하늘 아래 우뚝 솟은 몇 백 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안고 기를 받는다고 열심히 통사정을 해본다. ‘나에게도 기를 좀 주라~ 소나무야 잘 부탁해~’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 고구마장사 모자를 쓴 두 남매(상운 언니와 관악산님)의 다정한 기념촬영에 배꼽을 잡았다.
- ▲ 백두대간 제20구간을 종주하며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앙 흰모자 쓴 두 사람중 왼쪽이 필자.
- 머리 혹 나고 발목 접질려 시련 겪어
새파란 대나무 잎마다 소복 쌓인 눈꽃, 마른 나뭇가지에도 하얀 물감을 색칠해 놓은 듯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절경이 감동을 연출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장시간 종주에 지쳐가고 있었다. 경사로 깊은 길에 낙엽이 수북하니 모두가 스키 타는 폼이다. 앞에 가던 상운 언니가 연신 꽝꽝 넘어져 이젠 일어날 기운조차 다 소진되었다. 점남 큰언니도 많이 고단하신지 눈이 움푹 들어가 있는 듯해서 마음이 짠했다. 목표지점이 코앞인데 또 숨죽이라는 사인이 들어왔다. 그때 사방에서 아껴 두었던 초콜릿, 과일 등 간식이 날아들었다. 이젠 안심하고 도로에 발이 닿은 순간 고단하고 힘겨운 13시간 종주가 끝났다.
버스에 오니 너무나 맛있는 향기가 났다. 국물 잘 우러난 동태탕에 막걸리 한 잔. 그 맛이 예술인 동태탕을 먹고 올라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고단한 잠에 빠졌다.
어느새 버스는 안양에 도착했다. 고생하신 제동 아찌(기사)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버스에서 내리다 그만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 새로 공사한 차도와 차도 사이에 발이 떨어져 발목이 꺾이고 말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고, 삼진님 응급처지 후 겨우 집까지 왔다. 밤새 얼음찜질을 하고 병원 갔더니 깁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했다. 13시간 종주하면서 수십 번 넘어져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고 잘 견디어 냈는데, 집에 다 와서 이게 무슨 시련인지.
지난 한 해 종주를 돌아본다. 어느 구간 하나 편한 구간 없었고, 너무나 벅찼고 힘들고 고단했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끈끈한 동료애와 눈물나는 정성, 인내와 끈기를 배웠다. 한 해 동안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한 종주를 위해 파이팅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