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방 할머니^^
꽃방 할머니<전옥자>
문고리가 덜컹거리는 꽃방에 들어서려는데 큼지막한 자물쇠가 잠겨있었다. 늘 활짝 열려있는 꽃방인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나 궁금해서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자리를 비우실 때는 큰 자물쇠를 굳게 잠그는 습관이 있었기에 그날도 그러신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니를 기다리는 내내 어떤 발길도 없었고, 순간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때 옆에서 호떡을 굽는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손님이 ‘진달래 처자’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아주머니 눈빛도 살짝 흔들렸다. 할머니는 한동안 진달래 처자가 바쁜지 한 번도 안 온다며 날마다 꽃방문을 쳐다보셨다고 한다. 아까부터 내가 할머니가 애타게 기다리던 그 분인줄 한눈에 알아봤다며‘할머니는 지금 만날 수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랜만에 할머니와 그 옛날처럼 쌓아둔 이야기 오순도순 나누고 싶었는데 온 마음이 땅으로 뚝 떨어졌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단팥빵도 한아름 사갔는데 할머니는 오랜 투병 끝에 먼길 여행을 떠나시고 안계셨다.
사회초년병 시절 직장 꽃꽃이반에서 꽃꽃이를 배웠다. 수업에 필요한 꽃을 사러 근처 꽃방으로 달려갔다. 꽃방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예쁜 아가씨들이 꽃을 팔고 가꾸는줄 알았는데 꽃방엔 꽃과 어울릴것 같지 않은 할머니가 꽃을 손질하고 계셨다.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라는 노래 영향이었는지, 다른 꽃집에 갈까? 갈등까지 하였다. 그러나 순간 입에서는“이 꽃방은 할머니 딸이 하는 가곈가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할머니는“내가 직접 한다우. 예쁜 꽃을 한 번 봐요. 얼마나 싱싱한가. 새벽시장에서 직접 받아온다우”라며 꽃방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보였던 그 함박 미소로 꽃예찬에 신이 나셨다. 이렇게 꽃을 사랑하는 할머니께 조금 전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께 주문한 꽃을 받아들었다. 뚝딱 만들어낸 꽃다발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자 할머니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셨다.‘진달래가 피는 산골’이라고 하니 할머니는 내 고향이랑 같다며 좋아하셨다. 그후론 내 이름을‘진달래처자’로 새기셨는지 꽃방 갈 때마다 마술 한껏 부린 장미를 건네며 정을 주셨다. 어느날은 꽃꽃이반에서 배운만큼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는“진달래 처자를 응원하기 위해 꽃가위를 선물하겠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었는데 지인에게 부탁해 특별히 공수해온걸세. 이 가위 열심히 사용하고 나처럼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주게나”라며 밝은 미소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할머니가 나를 꽃을 사랑하는 수제자로 받아들이고 계신지 미처 몰랐다. 그렇게 애써도 안 되던 작품이 할머니가 시범 한번만 보여주시면 그대로 따라하면서 의도대로 꽃작품을 완성을 해 나갈 수 있었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할머니의 칭찬 덕분에 나의 실력도 하루하루 일취월장 했다.
할머니는 어느날 찾아온 관절염으로 다리가 붓고 한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는 고통이 왔을 때도 새벽 시장에서 꽃을 사오는 순간 고통을 잊는다고 하셨다. 꽃방은 작고 허름했어도 포근한 인정까지 더해져 인기는 대단했다. 할머니는“싱싱한 꽃을 보고 좋아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픈 다리도 금방 낫는 것 같아. 하루 세 끼 먹으면 되지 돈 욕심 없어. 꽃과 결혼한지 40년이지”라고 말씀하시는 눈빛에서 외로움이 보였다. 할머니 연세가 그때 일흔넷이었니 30대부터 꽃방을 하신 셈이다.
꽃길만 40년을 걸어오신 꽃방 할머니의 인생에 존경심이 들었다. 할머니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사기충천한 나는 꽃꽃이 사범 시험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을 했고, 그 기쁨을 꽃방할머니께 가장 먼저 전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그날 한 턱을 내신다며 뽀얀 국물의 설렁탕까지 사주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사랑을 과하게 받기만 하던 어느날 나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 할머니와 원치않는 이별을 했다. 자주 찾아뵙는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나와 헤어지면서 서운해 하던 할머니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할머니는 꽃방 옆으로 다시 직장을 옮기라며 아이처럼 보채기까지 하셨다. 진작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후 6개월이 지나 그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다. 헤어지던 날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을 찬찬히 읽었어야 했다. 나는 할머니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갑게 맞아주시고 기다려주실 줄 알았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세월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별은 천천히 준비하는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았으니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참 부끄럽다. 생전에 나를 걱정하느라 고통과 싸우시면서 연락도 안하셨을 꽃방할머니의 주름진 손, 털털한 웃음소리, 절뚝거리며 걷던 모습이 오늘따라 간절하다. 계실 때 조금 더 알뜰히 챙겨봐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만 몰려온다. 봄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 오면 주름꽃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시던 할머니가 더 간절하게 그립다. 그리고 그때 못했던 말 꽃방할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